버꾸농악 12마당 재현으로 국내 최연소 한국농악명인 선정
 
버꾸재비들이 버꾸를 치면서 춤을 춘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어깨죽지를 추켜올리는 몸짓은 작은 땅 위를 스치듯 사뿐사뿐 내딛는 발동작과 어우러진다. 그러면서 ‘된 버꾸’라 일컫는 빠른 가락이 오면 휘몰아치듯 감아 도는 기운을 내뿜기도 한다. 때로는 부드럽고 정갈스러우며, 때로는 흥겹고 경쾌하다. 이것이 광양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유의 전통 민속놀이 광양버꾸놀이의 한 모습이다.
광양버꾸놀이는 이미 전국에 알려질 만큼 명성을 얻었는데, 광양버꾸놀이를 전국에 알리기에 힘쓰고 있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양향진(54) 명인이다.
 
■ 광양버꾸놀이, 고유명사가 되다
양향진 명인은 광양읍 용강리 와룡마을이 고향인데, 광양 지역의 마을에서 행하던 농악놀이를 1997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버꾸놀이 12마당으로 재현해 국내 최연소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으로부터 한국농악명인에 선정됐다. 
또한 2001년에는 한국문예진흥원의 신진전통예술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으며, 1990년에는 광양버꾸놀이보존회를 만들고 광양버꾸를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 전국의 무대에서 시연하고,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해 왔다. 현재 양 명인은 광양버꾸놀이보존협회 이사장으로 버꾸놀이 맥을 잇기 위해 전승·전수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버꾸는 주로 농악에서 쓰는 자루가 달린 작은북을 말하는데, 이 작은 북이 풍물놀이의 주체가 되어 광양을 알리고 있는 셈이다. 특히 ‘광양버꾸놀이’는 그 자체가 고유명사가 됐기 때문에 광양을 알리기에 더없이 훌륭하다 하겠다.
 
■광양 버꾸의 전파 
“제가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바가지로 북치는 시늉을 했었는데, 그것이 버꾸놀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당시 나이가 네 다섯 살 때입니다.”
어려서부터 버꾸를 자연스럽게 접하며 음악적 소질을 발산한 그는 대학시절 음악교육학과에 들어가 우리가락 이외 다양한 음악도 접하게 된다.  
하지만 다양한 음악을 접할수록 우리가락이 그리워졌다고. 그래서 ‘탈패’ 동아리에 들어가게 됐는데, 이때부터 풍물소리가 들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배운 것을 전파하고, 또 배우고 전파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광양에 다시 내려온 그는 국악기를 직접 제작하여 판매하면서, 전수지도도 이어 갔다. 아울러 광양 버꾸에 대해 깊게 연구하면서 광양버꾸 12마당을 재현하게 된다.
이후 그는 광양 버꾸를 알리기 위해 전국 대회에 참가해 남원 춘향농악경연대회 우수상, 세계사물놀이 겨루기 대회 우수상, 김제 지평선 축제 전국농악경연대회 최우수상, 임방울 전국국악대전 국무총리상을 수상한다. 이를 통해 전국적으로 명성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광양버꾸를 배우려고 광양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 행정 무관심으로 광양버꾸의 명맥 끊어질까 우려
하지만 양 명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민만 깊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전수관 시설이 미비해 많은 사람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는데, 행정에서 전혀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양 명인은 “광양 지역의 전통문화인 버꾸놀이를 계승·발전하기위해서는 시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데, 시는 아무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저 혼자의 힘으로는 한계점이 들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시에서는 어떠한 무대에서도 불러주는 일이 없어 전수책임자들의 생계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재 광양시는 문화·예술의 도시를 조성코자 각종 사업 등을 유치하는 등 많은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앞서 세계적인 지역예술 명인의 광양버꾸가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살펴보는 것이 보다 광양을 알리기에 쉬운 일이며 광양을 살리는 길이라 본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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